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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현재] [역설의 공간Ⅱ-현대사와 부산의 장소성] <5> 베트남 파병과 부산의 두 기억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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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04 14:36
[역설의 공간Ⅱ-현대사와 부산의 장소성] <5> 베트남 파병과 부산의 두 기억 / 국제신문/ 2014.12.03/ 23면

기사링크>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41204.22023191329


부산항 제3부두에서 열린 베트남 파병 환송식에서 장병들이 도열해 있다.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은 박정희 정부의 파병 제안과 당시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른 월남과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졌다. 외적으로는 '전 아시아 평화와 안보수호의 집단적 안전보장에의 도덕적 책임', '6·25 때 입은 자유 우방국에의 은혜에 대한 보은' 등과 같은 정치적 슬로건과 수사를 내걸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당시 한국과 미국 정부가 처한 복잡하게 얽힌 대내외적 정치적 상황과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해관계가 더욱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1964년 파병을 시작하여 1973년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연간 최대 5만 명, 총 32만 명 이상의, 미군 다음으로 가장 많은 수의 한국 젊은 군인이 베트남전에 참여하였다.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에 관해 이야기할 때,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것이 얼마나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고,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는가를 종종 언급한다. 하지만 동시에 기억해야 할 것은, 이는 다름 아닌 사망자 5000명 이상, 부상자 1만1000명 이상이 발생한, 수십만 젊은이의 목숨을 담보로 성취된 것이었으며, 그들은 자신이 경험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해 전후에도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이나 돌봄을 받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또 우리에게 주입된 용맹스러운 한국 군인들의 모습 이면에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등과 같은 추한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 부산항 3부두, 눈물 자국 선연

베트남 파병의 기억과 관련하여 부산항과 부산에 있었던 베트남 난민보호소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부산항 제3부두(북항). 새로 지은 부산역에서 바라다보이는 이곳, 현재 재개발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고, 이미 완공된 부산항대교가 바라다보이는 이곳에서 수많은 젊은 군인이 집결하여 미지의 땅 베트남으로 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비디오를 보거나 몇몇 기록 사진들을 살펴보지만, 거기에는 거창하고 화려하게 포장된 모습만 담겨 있거나 순간적으로 포착된 군인들의 정지된 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환송식 도중 쉬는 시간에 한 여학생이 장병의 수통에 음료수를 채워주고 있는 모습.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

어느 베트남전 참전 군인의 증언에 의하면, 전쟁터로 떠나기 전의 '환송식'이 열린 부산항은 한쪽에서는 동원된 중고교생들이 파병 환송식 플래카드를 들고 국기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팡파르 속에서 화려하고 떠들썩한 모습을 연출했지만,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이 나뉘어 울고불고 난리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부산항은 그들의 눈물 자국이 선연한 곳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흘린 눈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떠난 부산항으로 그들은 또한 돌아왔다. 그 당시 베트남 참전군인 '환송식'에 동원되었던 한 중학생이 그의 회고에서 제기하듯, 자신을 비롯한 많은 학생이 '환송식'에만 동원되었을 뿐, 한 번도 참전 군인들의 '환영식'에는 동원되지 않았다. 떠들썩하고 화려하지만 동시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떠난 바로 그곳으로 상당수의 군인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고, 더 많은 군인이 정신적, 육체적 상처와 고통을 안고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부산항은 돌아오는 자들과 조용히 그들을 맞이하는 자들의 눈물 자국이 선연한 곳이 되었다.

최근 부산항 북항재개발 사업 진행과 함께 이곳의 장소적 가치와 의미를 재정립하고 연관된 역사적 기억들을 의미 있게 되새기고 후대에 남기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진행 중이다. 일단의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부산항에서의 베트남전 파병 행사를 재연하였고 베트남전 참전 기념 광장 또는 파병 광장 조성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이것들은 의미 있는 기획들이다. 그러나 몇몇 '중심적이고' 잘 알려진 이야기들만이 기억되고 재연됨으로써 '주변적'이거나 숨겨져 왔던 이야기들이 더욱 배제되고 억압될 수 있음이 우려된다.

■ 베트남 난민보호소는 잊혔다

둘째, 부산의 베트남 난민보호소. 베트남 난민을 실은 배가 부산항에 처음 도착한 1975년부터 1993년까지 2800명 이상의 베트남 난민이 우여곡절 끝에 부산의 난민보호소로 들어왔다. 당시 베트남 난민들은 부산항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항구를 통해 국내로 들어왔다. 그러나 결국에는 모두 부산의 난민보호소로 보내졌고 이들 중 일부만 한국에 남았으며, 대부분은 1년에서 8년에 걸쳐 이곳에 머무르다가 영구 거주를 위해 그들이 원하는 제3국으로 떠났다.

부산이 베트남 난민들을 위한 보호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데에는 베트남 난민들이 가장 처음으로 부산항으로 들어왔다는 사실과 함께 여러 입지 조건들과 과거의 피난민 수용의 경험 등의 요인들이 작용하였다. 조그마한 배에 몸을 싣고 바다를 떠다니다 가까스로 구조되어 상당한 기간을 부산에 머무르며 베트남 난민들이 경험한 것이 그들의 기억 속에 얼마나 의미 있게 각인되었을지를 짐작해본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으며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조그마한 배에 수많은 사람이 몸을 싣고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구조를 요청하는 '보트피플(boat people)'의 이미지가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공산화된 베트남을 탈출한 그들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동원되어 반공의식, 총력안보, 국론통일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주입하는 데 요긴하게(?) 이용되었다. 이는 그들에 대한 단편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였고, 그 이면에 있는 그들의 생존을 위한 일상의 투쟁과 난민보호소 등에서의 삶의 모습들은 많은 이들에게 가려짐으로써 기억의 단초를 찾기가 쉽지 않다.


# 지금 베트남 난민보호소는

- 흔적없이 지워진 난민, 기억을 닫아버린 부산

부산 베트남 난민보호소에 들어가려는 베트남 난민들의 대기 행렬.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 제공


베트남 난민보호소가 위치했던 곳을 찾아갔다. 현재 그곳은 멋진 공원으로 꾸며져 있고, 고층 아파트 단지로 둘려싸여 있으며, 바로 앞에는 화려한 부산 영화의전당 건물이 들어서 있다. 난민수용소와 연관된 어떤 의미 있는 흔적을 찾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현실이 부산에서 (더 나아가 한국에서의) 베트남 난민과 관련된 역사 인식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주변 중에서도 주변에 불과하며 그렇게 힘써 기억해서 남길 필요조차 없는 그런 것. 오직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기억하는 그런 것. 기록 사진이나 비디오 등의 자료를 힘들여서 찾고 뒤져야만 그것의 흔적을 되새길 수 있는 그런 것 정도 이상은 아닌 것으로 간주할 뿐이다.

부산과 베트남 파병의 기억은 상당수의 사람이 힘써 영광스럽게 오래 기억하고자 하는 것에 속하며, 부산과 베트남 난민과 난민보호소의 기억은 주변으로 밀려나 거의 지워진 오직 관련된 소수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러한 두 기억을 동시에 배치해 기억하고자 한 것은 한 지역 또는 장소성을 지닌 공간의 특징이 본질적으로 단수적이고 닫힌 것이 아니라 복수적이고 열려 있음을 생각해 보고자 함이다. 한 지역 또는 공간의 복수적이고 다층적인 의미 구성의 특징은 우리 기억의 지향점이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를 향할 뿐 아니라 동시에 미래를 향하여 더욱 열려 있을 때 그 가능성이 확장된다. 도시의 공간은 역사적 사건들이 쓰이고 지워지고 잊히고 또다시 쓰이는 그런 다층적인 역사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누가 무엇을 왜 기억하느냐 하는 것, 즉 기억의 정치학이 결국, 중요한 과제로 남게 된다.

이유혁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조교수

※공동기획: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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